자리짜기 좋은 사회

|2016

자리짜기 좋은 사회- 누군가의 자리

“이 안에 있는 의자들은 방학동에서 버려지는 섬유 폐기물 양말목으로 사람들과 버려진 의자에 자리를 짠 결과물이다.” 이 한줄짜리 문장 안에 들어있는 시간과 과정들을 적어내려간다.

2014년 방학동에서 양말목을 만났다. 양말목을 만나 손바닥만 한 천을 짰고 손바닥만 한 천 조각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관계를 엮어나가면서 방석이 되고, 발매트가 되고, 파우치가 되었다. 버려지는 것으로 다양한 쓰임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형태와 색, 의미가 확장된 과정들이 “누군가의 자리”의 토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자리는 “의자(자리)를 주세요.” 쓸모없음을 수거하고, “같이 엮으면 자리(장소)가 됩니다.” 시민청 장소에 개입하여 방석을 짜고 사람들과 모여 앉아 버려지는 것들로 매일 매일의 자리를 짜는 워크숍의 과정들의 결과전시다. 나와 누군가가 있는 장소가, 지위가, 쉴 수 있는 자리가 위태로운 현 상황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적극적으로 묻는 행위들이었다.

지금의 자리 없음을 특정 누군가만 느끼는 박탈감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 일반적 정서라는 걸 체감한다. 칠포세대니 실버푸어니 사회적 자리 없음을 대변하는 용어들이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힘들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이 버티는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자조적인 물음에 “자리 짜기 좋은 사회- 누군가의 자리”는 말을 건넨다. 우리 같이 모여 소비하지 말고,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가 자리를 짭시다. 자리를 짜며 밥을 나눠 먹으며 더디지만 즐겁게 “무엇”이 될진 모르지만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이 고리와 고리를 묶어내고 의자에 엮으며, 세우고 높이는 투쟁말고 깔고 앉으며 옆으로 넓어지는 손잡음의 시간을 보냅시다. 그 손잡음의 과정들이 축적되어 의견이 되고 담론이 되어 발화가 되는 시간을 가집시다. 당장에 찾아오는 변혁도 미래도 아니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선영 ‘being being being’ 전시 서문에서 인용